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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듀 포스팅] 질문은 권리이자 참여의 시작…학생·부모 묻는 방법도 배워야

학교 현장에서 자주 마주치는 안타까운 장면이 있다. 교실 한쪽에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혼란스러워하는 학생이 있지만, 끝내 손을 들지 못한 채 수업이 지나가는 모습이다. “이해가 되지 않으면 질문하세요”라는 말은 자주 들었지만, 막상 질문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더 놀라운 것은 이러한 현상이 학생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학부모들 역시 학교 행사나 봉사단체 활동에서 궁금한 점이 생겨도 정중하게 묻기보다, 때로는 익명으로 감정이 섞인 메시지를 남기곤 한다. 질문은 하지 못하고, 불편함은 속에 쌓인 채, 오해와 거리감은 조금씩 자라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말하지 못하는 걸까. 그리고 어떻게 하면 서로를 더 잘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을까.   ▶질문을 막는 심리적 장벽   한국 사회에선 오랫동안 우리 사회에는 ‘묻는 사람은 모르는 사람’, 더 나아가 ‘질문은 부족함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인식이 존재해 왔다. 그로 인해 질문은 부끄러운 행위로 여겨지고, 자연스럽게 침묵이 익숙해졌다. 예를 들어, 수업 중에 “이건 어떻게 되는 건가요?”라고 묻고 싶지만, 주변의 시선이 의식되어 끝내 말하지 못하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권위에 대한 과도한 민감성이 높은 한국인들은 교사나 단체 운영진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은 그 결정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으로 오해될 수 있다. 특히 서열과 체면을 중시하는 문화 속에서는 이러한 행동이 무례하게 보일까 봐 망설이게 된다. 또한 여러 가지 걱정들이 질문하는 것을 막는다. “괜한 말 했다가 괘씸하게 보이진 않을까”, “다른 부모들이 이상하게 보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질문을 막는다. 조직 내부에서 소수 의견을 드러낸다는 것은 때로는 외로운 일이기에, 직접적인 질문보다는 우회적인 방식으로 표현하는 경향이 생긴다. 그리고 가까운 사이에서 쉽게 발생하는 문제로 궁금한 걸 물어보지 않고 참다가 질문이 아닌 ‘불만’으로 표출될 때가 있다. 그 이면에는 충분한 설명 없이 내려진 결정에 대한 감정적 반응이 자리 잡고 있다. 억울함, 서운함, 실망감이 복합적으로 얽히면 질문 대신 감정 섞인 항의로 이어지기 쉽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은 문제 해결보다는 단절과 오해 혹은 불화를 낳기 쉽다.   ▶건강한 소통을 위한 실천적 제안   -질문은 권리이자 참여의 시작이다   질문은 단순히 이해를 돕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이는 공동체의 운영에 참여하고자 하는 진심 어린 관심의 표현이며, 더 나은 방향으로 함께 나아가기 위한 출발점이다. 예를 들어, “왜 그렇게 결정하셨나요?”보다는 “이 결정의 배경이나 기준을 좀 더 듣고 싶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상대방에게 방어감을 줄이고 대화의 문을 열게 한다.   -심리적 안정감을 조성해야 한다   학생이든 학부모든 “질문해도 괜찮다”는 분위기 속에서야 질문할 용기도 자란다. 지도자는 질문을 환영한다는 태도를 분명하게 드러내야 하며, 질문에 대한 평가나 비난은 철저히 배제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학교나 단체에서 “궁금한 점은 언제든지 직접 문의해주세요”라는 말을 공지에 포함하는 것만으로도 질문의 장벽은 낮아진다.   -질문하는 방법을 함께 배워야 한다   학생뿐 아니라 학부모에게도 ‘좋은 질문을 하는 법’을 안내하는 것은 소통의 질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갈등을 피하고, 비난이 아닌 이해와 협력의 언어로 바꾸는 훈련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왜 이렇게 하셨나요?”라는 말 대신, “다른 방향도 고려되었는지 궁금하다”라고 말하면 상대방은 의견을 위협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열린 대화를 이어가기 쉬워진다.   이의 제기가 아닌 참여로 인식하도록 해야 한다   수업시간에 묻는 말이나 의견 제시가 수업의 흐름을 방해한다고 생각하여 기피하는 현상이 있다. 하지만 이는 함께 더 나은 방향을 찾아가는 ‘기여’로 보아야 한다. 이는 구성원 모두가 건강한 공동체 의식을 갖는 데 중요한 출발점이다.   학교는 단지 시험 점수를 높이는 곳이 아니라, 삶의 태도와 사회적 기술을 배우는 공간이어야 한다. 질문하는 용기, 서로 다른 생각을 존중하는 자세,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태도는 학문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부모와 학생이 함께 소통의 방식을 배우고 실천할 때, 학교는 단순한 배움의 공간을 넘어 따뜻한 공동체로 성장할 수 있다. 지금 우리가 함께 기르는 질문의 문화는,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의 인간관계를 결정짓는 중요한 씨앗이 될 것이다.   ▶문의:(323)938-0300     www.a1collegeprep.com 새라 박 원장 / A1칼리지프렙에듀 포스팅 권리 참여 공동체 의식 학교 행사 봉사단체 활동

2025-03-30

[독자 마당] 양두구육(羊頭狗肉)

한국의 한 젊은 정치인이 양두구육(羊頭狗肉)이라는 말을 해 논란이 됐다. 양두구육은 양머리를 내걸고 개고기를 판다는 한문 사자성어다. 겉과 속이 다른 것을 말한다. 서양사람들은 좀 더 노골적이어서 양의 탈을 쓴 늑대라고 말한다.   많은 동물들이 사람에 의해 수난을 당한다. 잡아 먹히기도 하고 일도 하고 등에 사람을 태우고 달리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사람의 말에 의해서도 수난을 당한다. ‘여우같이 간사하다’느니 ‘곰같이 미련하다’는 등의 말에 이용이 된다.  양의 탈을 쓴 늑대라는 말도 그 중 하나다. 이 말은 다른 사람을 나쁘게 표현할 때 쓰는 말이다. 겉으로는 착한 척 하지만 실제는 악랄한 사람을 일컫을 때 쓰는 말이다.     그런데 실제 양은 착한 것만은 아니라고 한다. 숫놈들은 짝짓기 철이 되면 머리에서 피가 나도록 서로 박치기를 하며 싸우고 때로는 이로 인해 죽기도 한다. 또 여름에는 다른 양이 시원해질까봐 일부러 몸을 맞대고 자기도 하고, 반대로 겨울에는 상대방이 따뜻해질까 싶어 떨어져 잔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말이나 행동이 온순한 사람을 양같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반면 늑대는 사나운 사람을 비유할 때 자주 사용된다. 그러나 실제로 늑대는 착한 면이 많다고 한다. 집단생활을 하며 공동체 의식이 강하고 사냥한 성과물도 나눈다. 위계질서가 강해 질서있게 움직이고 새끼는 공동양육을 한다. 결국 동물에 관한 인식은 주관적이거나 편견에 불과한 셈이다.      만약 어떤 늑대가 평생 앙의 탈을 쓰고 양같이 온순하고 착하게 행동한다면 그것은 이미 늑대가 아니라 한마리의 양이라고 생각한다.      ‘양두구육’이라고 말한 젊은 정치인을 너무 나쁘게만 생각하지 말고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주길 바란다. 서효원 / LA독자 마당 양두구육 반면 늑대 공동체 의식

2022-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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